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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가 살고 싶은 전통 한옥 짓기

내가 살고 싶은 전통 한옥 짓기


 


아름다운 집-한옥의 특성[3]

 

우리 선조가 살고 있던 집을 통상 한옥이라 부르듯, 한옥은 주로 목조로 만든 건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목조라는 집들과는 차이가 없으나 꾸미는 방식에서 크게 차이를 지녀왔다.

 

또한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마루와 온돌이 있다는 것이며, 거기에 적절한 일사량을 유지시켜주는 조상의 지혜가 서려있는 마당과의 한옥의 조화는 한옥의 멋스러움과 우리의 선조들의 지혜를 여러모로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마루와 온돌은 그 성질상 특히 상반된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루는 개방적인 남방문화의 소산이요 온돌은 폐쇄적인 북방문화의 소산임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개의 기능이 함께 존재하는 한옥의 특징은 우리 기후에 가장 적합한 기능의 완결성을 의미한다. 마루와 온돌은 오랜 기간을 통해 선택과 적응의 과정을 거쳐 전해 내려 왔으나 온돌의 경우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거의 절대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데 비해 마루는 민가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고 그 유형도 지역이나 집의 규모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다.

 

기능적으로 보면 마루는 마당 쪽으로 완전히 개방되어 마당과 유기적으로 엇물리는 공간이 되며, 내부공간의 엇물림은 건축적 공간성을 높여주는 우수한 방법이고 좁고 한정된 내부공간을 외부로 확장하거나 외부공간이 내부에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의 신축성 또는 탄력성을 부여하는 우수한 연결방식으로 볼 수 있다. 또 앞마당 쪽으로만 개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뒷문을 열면 후원과도 연결되어 상호 관통하는 공간이 되게 한다. 따라서 마루는 외부와 내부공간을 이어주는 반 외부공간인 동시에 평면적으로는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고 공간을 중계하는 매개공간이라 볼 수 있다.
 

 ▲ 대청마루

 

앞장에서도 간략히 설명한 안방과 건넛방, 혹은 사랑방과 누마루 사이에 위치하여 두 개의 공간을 서로 연결하면서 기능적으로는 중간 역할을 하는 곳이다. 또 마루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또 다른 측면의 매개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집 전체를 관장하는 성주신의 성주단지를 모시는 곳이 이곳이고 제사를 지내고 상청을 차리는 관혼상제의 공간과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마루이기 때문이다. 즉 신이라는 존재와 인간이라는 상, 하의 두 존재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마루이다.

 

한편으로 상류주택의 경우 가장 권위 있는 공간은 누마루가 된다. 누마루는 형태상으로는 고상식이고, 기능적으로는 여름에 습기를 피하면서 조망,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대청마루가 대개 한 면이나 두 면이 개방되는데 비하여 누마루는 세면이 개방되어 있어 외부의 수려한 풍광을 집안으로 끌어 당겨주는 공간이 된다. 따라서 누마루가 있는 공간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경관과 아울러 밖에서 보면 전체 집모양의 수평적, 수직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상승공간이 된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이는 지붕 선은 수직과수평적 지붕에 크기가 다른 합각부분이 전후좌우에 중첩 배치되어 전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한없이 단순하고 부드러운 조화미, 어디서나 맛 볼 수 있는 정교한 아름다움, 면으로 치장된 벽체와 어우러져 나타내는 여백의 미, 아침 햇살을 가득 받아 표현되는 담백한 선, 창살과 창호지의 새하얀 멋과 어우러진 잘 닦인 앞마루의 고요한 선미. 이 모든 것이 한국인의 정서와 심미안을 나타내는 마루가 보여주는 우리의 마음인 것이다.

 


가]. 용도별 분류

 

1]. 안채: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에 위치하는 안공간인 ‘안채’는 보통 안방, 안대청, 건넌방, 부엌으로 구성되어있다. 안채의 안방은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실내 공간 중에서도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출산, 임종 등 집안의 중요한 일이 이뤄지던 여성들의 주된 생활공간입니다. 그러기에 안채는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인 북쪽에 위치하며 이는 여성의 사회생활을 꺼려하여 남편이나 친척 외에는 남자들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성의 외부와의 출입을 제한하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공간배치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랑채와 달리 학문탐구 등의 활동공간이라기 보다는 가족들의 의식주를 전담하는 공간으로 가구류도 의복과 침구류 보관을 위한 수납용가구 등이 통상 놓여있다.

 

2]. 사랑채: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 대한 숙식으로 대접하는 장소이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집안의 어른이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교육하는 장소로 ‘사랑채’라고 하였습니다.

 

주로 사대부 남자들이 모여서 학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시를 짓거나 거문고 등, 악기를 연주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영위한 것도 사랑채에서 하였으며 부유한 집안의 경우는 사랑채가 독립된 건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주로 대문 가까이의 바깥쪽 방을 사랑방으로 정해 남자들만의 공간으로 사용했다. 사랑채는 보통 사랑대청과 사랑방으로 구성되며 부유한 집안은 누마루를 마련하며 한층 품위를 살렸고 사랑방은 사랑채의 주요 공간으로 주인과 귀한 손님이 기거하는 공간으로 활용 되었다.

 

상류주택의 사랑방은 기거와 침식 외에도 독서, 예술 활동, 접대 등의 많은 행위가 이루어졌던 중요한 공간으로 유학을 장려하여 문필문학을 존중하며 경전을 연구하는 풍조가 만연하던 조선시대에는 가히 사랑방문화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유교적인 생활을 지향하는 선비의식의 영향으로 사랑방의 가구나 장식은 매우 간소하게 꾸며져 보통 몇 개의 방석과 작은 책상, 책장, 장농, 문방소품 등으로 구성되었다.

 

3]. 사당채:


대문으로부터 가장 안쪽, 안채의 안대청 뒤쪽이나 사랑채의 뒤쪽 제일 높은 곳에 '사당'이라는 의례 공간을 마련, 조상숭배 의식의 정착과 함께 별도의 공간을 두기도 하였다. 보통 사당에는 4개의 신위를 모시는데 서쪽부터 고조의 신위, 증조의 신위, 할아버지의 신위를 모시며 마지막에 부모의 신위를 모셨습니다. 각 위 앞에는 탁자를 놓고 향탁은 최 존위 앞에 놓았으며 대개의 중상류 주택은 가묘 법에 따라 사당을 건축하지만 사당이 없는 집도 많아 통상 대청마루에 벽감을 설치하여 신위를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4]. 행랑채:


‘행랑채’라 하여 하인들이 기거하거나 곡식 등을 저장해두는 창고로서 쓰였던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이것은 상하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공간을 다르게 배치하였던 것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의 경우에는 하(下) 공간인 행랑채는 그 주택의 규모에 따라 '바깥행랑채'만 또는 '중문간 행랑채'도 존재 하였으며 바깥행랑채는 대문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집안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머슴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으며 중문간 행랑채는 양반들이 기거하는 안채, 사랑채와의 중간(中間)공간으로 집안의 중간 계층인 청지기가 거처하였다. 이들 공간들은 커다란 한 울타리 안에 작은 담장을 세우거나 채를 분리하여 구획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상류주택은 신분과 남녀별, 장유별로 공간을 분리하여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당시의 가족생활을 고려한 공간 배치를 한 것입니다.

 

5]. 별당채:


통상 ‘초당’이라 불리기도 하는 별당은 규모가 있는 집안의 가옥에선 별당이 안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게 불리어지도 하였으며 결혼 전의 딸들이 주로 기거하며 또한 결혼 전의 남자 아이들의 글공부를 위해 '서당'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집도 있었다.

 

6]. 곳간채:


중상류층이상의 주택에서도 부유한 집안들은 수십 칸 규모의 주택을 짓고 살았으며 이들 '칸' 수가 많은 전통주택에는 ‘곳간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오래도록 저장 해두어야 할 음식이나 여러 가지 생활용품들을 저장, 보관하는 공간입니다.

 


나]. 구조적 분류

 

 1]. 누마루:
 

▲ 누마루   

 
‘누마루’는 기단 없이 기둥위에 설치된 형태로 주로 사랑채에 설치되어 원두막처럼 마루바닥 밑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사방이 트인 노출공간이다. 대청처럼 여름에는 문을 걸어 올려 주변의 자연과의 운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겨울철에는 문을 닫아 한기를 막았습니다.

 

2]. 다락:


 

▲ 다락    

                                        

‘다락’은 안방의 아랫목 쪽 벽과 부엌과 면한 벽 쪽에 방바닥에서 45cm[1.5척]되는 곳에 설치된 수납공간이다. 이 다락에는 귀한 음식에서부터 가재도구 등 살림살이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3]. 담:
 


▲ 담장  

 

전통가옥은 ‘담’과 함께하는 문화라 할 정도로 ‘담’은 치안을 위해서 높이 쌓거나 위협적으로 쌓는 일이 없이 나지막하며 은은한 장식을 두어 시적(詩的)감흥을 고취시킨 운치가 많이 있습니다. 또한 담장을 장식한 무늬는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많았으며 일반 농가의 경우, 지나가는 사람도 담 너머 들여다 볼 수 있을 만큼 나지막하게 쌓아 단지 집 밖과 집 안을 구분한다는 의미에서 둘러놓은 경우가 많았으며 민가에는 특별히 담장이나 대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싸리나무를 집 둘레에 심어 경계를 나타내거나 아예 대문이 없거나 사립문이 있더라도 늘 열어 놓고 살았다.

 

문은 닫아놓아 공간을 단절한다는 의미보다는 늘 열어놓고 통과하는 데 더 많은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한국의 문들은 대부분 늘 열려 있습니다.

 
4]. 기둥:

 

‘기둥’에 대해선 단면 형태로 구분하여 보면 [원기둥]과 [각기둥]이 있고 위치에 따라 구분하면 건물의 외곽에는 [외진주], 내부에는 [내진주]가 있다.

 

가.단면형태(기둥 깎는 기법)에 따른 분류 


 

▲ 단면형태분류   

 

*원(圓)기둥
-원통기둥 : 기둥 위부터 아래까지 일정한 굵기.
[건축물] : 송광사 국사전, 내소사 대웅보전
-민흘림기둥 : 안정감과 착각교정을 하기 위해 기둥위보다 아래가 작은 기둥.
[건축물] : 개암사 대웅전, 쌍봉사 대웅전, 화엄사 각황전, 서울 남대문
-배흘림기둥 : 육중한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기둥 높이의 1/3정도 에서 가장 굵어졌다가 다시 차츰 가늘어 시각적 안정감을 주는 기둥.
[건축물] :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무위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해인사 대장경 판고,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각(角)기둥
-4각주(四角柱) : 일반주택이나 장식이 덜한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정림사지탑, 익산 미륵사지 탑, 경회루 향원정
-6각주(六角柱) : 건축물 평면이 6각인 정자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경복궁 향원정
-8각주(八角柱) : 장식이 많은 건축물에 사용.
[건축물] : 쌍용총 8각 석주, 석굴암 8각 석주

 
나.위치에 따른 분류

 

*외진주(外陳柱)(바깥기둥: 평주(평기둥)와 우주(귀기둥) ): 소규모의 구조물에 사용
*내진주(內陳柱)(안기둥: 고주, 단주, 실심주):고주는 대부부의 구조물에 사용되며 중층건축물에 사용되는 단주와 다층건축물과 목조 탑파 형식에 사용되는 실심주가 있음
*동자주(童子柱)(활주) : 추녀부분의 처짐을 방지


5]. 온돌:
 


온돌은 신석기시대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오래된 우리의 난방구조이다. 움집을 짓고 살면서 기능별 공간이 구분되지 않은 채 가운데를 둥글게 파고 그곳에 불을 피워 취사와 난방 그리고 조명으로 사용하였고 주위로 냇돌을 대어 불의 번짐을 막음과 동시에 잔열도 이용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를 온돌의 기원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중기까지도 온돌은 일반 민중들이 선호하는 시설이었을 뿐 그 당시 지배계층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중국이 입식생활을 한 관계로 우리나라 지배층도 입식생활을 선호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노약자나 병자를 위한 공간 즉 집의 일부분으로 온돌을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가 되어서야 온돌이 일반화된 것 같다. 따라서 원래는 우리도 중국과 같은 부분온돌이 나중에 전면온돌로 바뀌면서 우리의 생활습관 자체가 입식생활에서 좌식생활로 바뀌었으며 이러한 연유로 신을 벗고 생활하는 우리 주거의 공간 구성으로 형성되었으리란 추측이 가능하게 된다.

 

‘온돌’은 열의 전도, 복사, 대류를 이용한 한국 고유의 난방 방식입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우리나라는 가옥의 구조에도 계절적 온도 변화를 고려하였습니다.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구들과 여름이면 사방으로 바람이 통하도록 되어있는 대청이 공존하는 가옥 구조형태인 것이다.

 

추운 날에는 아궁이에 불을 때, 방바닥 밑의 구들장을 데워 방안을 따뜻하게 하였으며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열기로 인해서 음식도 조리하게 되었으며 경사진 부넘기를 넘은 열과 연기는 아궁이로 내닫지 않고 개자리에 이르며 그 열과 연기는 개자리에서 머물다 굴뚝을 통해 빠져 나가므로 구들은 오랫동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의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온돌의 효능을 익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궁이와 구들은 어느 지방이나 거의 비슷한 형태지만 굴뚝은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북방지역은 열도 뺏기지 않아야 하고 서북풍이 역류해도 안 되기에 굴뚝을 어디에 두느냐에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굴뚝을 그냥 외기에 노출시키지 않게 두껍게 감싸 외기를 차단하고 개자리를 파서 열기가 더 머물 수 있도록 하였을 뿐 아니라 역풍이 들어와도 차단하는 기능을 발휘를 하였다.

 

남방지역은 북방지역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로 굴뚝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가 없었으니 고래 끝에 구멍 날을 내어 개굴을 노출시킬 정도로 북방지역과는 다른 형태의 굴뚝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6]. 창:
 


▲ 창  

 

‘창’이라 함은 문과 같은 형식이지만 머름대 위에 설치되거나 크기가 문보다 작은 것을 창이라 합니다. 창은 채광, 통풍을 위하여 홑창호지를 바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창살 문양 또한 취향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였다. 상류주택에서는 일반적인 사각형의 창외에 그리 많지는 않으나 원창, 반월창 등을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통한옥의 창은 창호지를 사용하였고 또 문풍지가 있어 따로 환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고정된 봉창 같은 것이 발달하기도 하였으며 창에는 봉창, 화창, 광창, 교창, 눈곱재기창, 살창, 갑창 등이 있습니다.

 

7]. 창호지:


한국의 전통가옥에서 문과 창문은 격자무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무늬의 나무 창살을 만든 후 그 위에 한지를 발라 채광과 통풍을 고려하였으며 투명한 유리가 아닌, 한지를 통해 비쳐 들어오는 햇살은 강렬하지도 않고 은은하며 방안 분위기를 한층 차분하고 아늑하게 만들었다.

 

한지는 채광뿐 아니라 통풍에도 재료적 특성으로 조금씩이나마 방안의 탁한 공기가 빠져나가고 밖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며 공기의 순환을 시켜준다.


이렇게 공기를 순환시켜줌으로써 뜨거운 구들바닥으로 인해서 건조해지기 쉬운 방안의 온도와 습도를 항시 적당하게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8]. 문:


 

▲ 문  
 

조선시대 주택의 출입문은 위치나 용도에 따라 그 구성 및 모양을 달리할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엌의 출입문이나 대청 뒷면의 문은 판장문과 같은 두꺼운 문을 설치하였고

 

 

▲ 들어열개문   

 

대청에는 들어열개문을 설치하였는데, 보통 문은 이중문으로 바깥쪽의 것을 덧문이라고 하여 방한과 방충 등의 용도이며 방과 방 사이에는 샛장지를 설치하고, 때로는 갑장지문을 쓰기도 합니다.


이러한 장지문들에는 채광을 고려하여 창호지를 발랐는데, 문살은 완자살과 아자살이 대부분이고, 이처럼 문살을 세밀하게 나눈 세살문은 모두 쌍여닫이, 미닫이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북쪽으로 갈수록 문살의 밀도가 낮은 정자문살이 사용되었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문살의 밀도가 높은 창살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일조량이 적은 북쪽에서는 보다 많은 빛을 방 안에 들이기 위해, 남쪽에서는 보다 적은 빛을 방 안에 들이기 위해 문에서 종이의 면적과 살의 비율을 달리한 것이다.


문의 종류에는 판장문, 골판문, 맹장지문, 도듬문, 불발기문, 장지문, 분합문, 두껍닫이문 등이 있습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친환경 생태 한옥

 

 

 

 

가]  한옥이 좋은 이유
 
1]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상공간 한옥
  

 

▲ 자연과의 조화로운 한옥 모습     

 

자연을 관조하며 거기에서 생의 유연함을 배우며 살아왔던 한국인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반드시 주변의 환경과 어울리도록 집의 방향을 잡으면서도 결코 사치스럽지 않고 궁색스럽지 않은 단정한 집을 지었다. 결국 이런 지형에 맞는 집은 우리가 사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삶의 영유와 편안함, 안정감 등을 고려하여 살아가며 풍수에 맞도록 적응해 보이며 뒤로는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과 앞으로 펼쳐진 넓은 평야에 파묻힌 아담한 형태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주위의 경관요소를 거슬리지 않는 곳에다 주변에서 나오는 재료를 사용, 지세에 맞는 형태로 집을 짓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집주위에 산재해 있는 바람, 들, 풀, 그리고 하늘까지도 모든 자연요소를 집안으로 끌어 드렸다. 자연과 집,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서로가 남이 아닌 일체감을 갖는 하나의 완벽한 이상체인 것이다.

 

자연 속에서 함양된 우리의 의식은 집을 지을 때에도 되도록 인공적인 기교나 장식을 피하며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가지고 자연친화적인 편안한 집을 지은 것이며 가령 나무를 쓰더라도 자연 그대로의 나무둥지에 가지만 잘라내 사용하였으며 주춧돌과 밀착되는 면도 다듬지 않은 상태에 그대로 밀착시킬 정도로 한옥의 가구에서 가장 중요한 대들보마저도 나무가 휘어져 있으면 그 상태 그대로 사용하였을 정도이니 한옥에서는 우리 주위의 자연재료를 가지고 인공을 가하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여 한옥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던 것이며 이는 농본 문화적 특성을 가진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을 행함에 있어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2]  풍수에 맞게 설계된 살림집의 이상형 한옥

 

통상 ‘집터’는 들녘을 피해 산기슭에 올라서서 지었다. 산기슭의 집터는 조건이 까다로워 뒷산이 날카로우면 인격 함양에서 심성이 메마르고 단기에 치우친다하며 뒤쪽 산형이 둥글고 너그러우면 덕기가 넘친다고 하여 그런 지형을 택하여 예전부터 우리는 집을 짓기 전에 풍수를 고려했던 것이다. 또한 지형적으로 산사태가 날 자리엔 집터를 잡을 수 없고, 큰물이 쏟아지는 계곡도 마땅치 않아 집은 남향으로 짓는데 골짜기가 남향으로 열려야 볕이 잘 들며 이런 터전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바람기가 있어 시원하다. 산의 능선 중 어느 한쪽이 낮아 바람이 휘몰아치면 나빠지기에 바람기도 온화해야 한다. 산은 고정되어 있으나 계곡의 물은 항상 흐르고 있어 산이 조건을 만족스럽게 구성하였다 해도 이 물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으니 따라서 물도 좋아야 하기에 이렇게 고루 갖추어진 터전을 골라 우리는 좋은 ‘집터’ 라고 하며 지어 왔다.

 
3]  현대건축과는 구별되는 한옥의 실내외 구분

 

현대 건축에서 문을 닫고 들어서면 실내라 부르고 문을 열고나서면 실외라 하는데 한옥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어렵게 되어 있다.

 

대청에서 바라보면 기둥들도 독립되어 서 있고 벽체가 없다. 방의 바깥쪽에도 대청에서 이어지는 툇마루가 있는데 툇마루 역시 기둥과 벽체 없이 독립되어 있다. 기둥이 서 있는 선상에서 실내외를 구획하는 방법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집이 기둥 밖으로 쪽마루가 돌출되어 있어 기둥 서 있는 선을 경계 삼기도 어렵다. 시골집에서는 기둥 밖 처마 아래에 시렁을 매고 광주리나 밥상 등 세간을 얹어 놓아 기둥 밖으로까지 살림터전을 연장시킨다.

 

실내외를 구분하는 것은 보통, 살림하는 터전을 실내라고 규정지으며 한옥은 안마당에도 우물가에도 살림 도구를 늘어놓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남쪽 지방으로 가면 안마당에 장독대를 설치하고 마당가 우물가 주변에 여러 가지 도구들을 놓는다. 또한 물가에서 씻고 빻고 치는 일들이 일어난다. 안마당이 생활터전이 되는 것이다. 부엌 안에서만 작업하는 방식과는 다르고 추수 때는 곧바로 대문 밖 마당에서 타작한다. 이렇듯 한옥의 생활 터전은 제한이 없을 정도이다.

 
4]  한옥은 마루와 구들의 절묘한 조합


 

▲ 마루와 구들의 조합     

 

마루와 폐쇄적인 온돌은 어떻게 조화를 이루나?

 

구들 들인 온돌방은 벽으로 막아 밀폐시킨 데 비하여 마루의 다락집은 기둥과의 사이를 탁 터놓았다. 벽체가 구축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겨울철이면 장막을 늘어뜨리고 여름이면 발을 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이 현상은 근세에까지 꾸준히 계속되어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한옥에서는 마루 들인 부분에서는 기둥과의 사이를 터놓고 살고 있으며 방이 차지하는 공간이 증대되면 마루 있는 집은 더욱 합리적인 균형을 찾게 된다. 구들의 방과 마루가 적절하게 균제하여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낮은 바닥의 구들 시설인 방의 바닥은 높이하고, 높은 마루의 다락은 키를 낮게 해서 마침내 수평을 이루게 하며 결국 구들과 마루가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된다. 이 높이의 균제에서 한옥은 완성을 추구하게 되며 결국 우리의 한옥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다.

 
5]  주인의 쓰임새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 


 

 

 쓰임에 따라 필요에 따라 경내에 집을 따로 짓는다. 그중에서도 여러 채의 곳간이 건축되었는데 곳간채는 가을에 거두어들인 많은 양의 벼를 간수하기 위하여 지은 창고로 규모가 크며 습기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고, 쥐 등의 해로운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은 건물이다. 한옥 구성에서 행랑채가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곳간으로 사용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처음에는 몇 칸만으로 만족되다가 그것이 부족하게 되면 필요에 따라 자꾸 증설해 나간다. 행랑채가 안행랑, 중행랑, 바깥 행랑 등으로 증가되는 까닭이 되는 것이다.

 
6]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설치
 


▲ 인체를 기준한 한옥의 창 모습    

 

창은 머름대 위에 설치하며 두 짝 창을 달게 되는데 머름과 그 위에 세운 벽선과 인방이 구조하는 선상에 의하여 완성된다. 창은 주인의 식견과 성정을 잘 나타내는 얼굴이라 여겼기 에 이 부분의 구조에서 주인은 각별한 주의를 경주하였고 자기 식견을 드러내려 하였다.

창의 기본구조에서 그 설치 기준을 인체에 두었는데 머름대 높이를 앉은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에 들도록 하며 가슴팍이 남실거리며 닿을 정도의 높이였다. 머름대의 높이는 문갑 등 실내 가구 제작에서 높이를 제한하는 절대 기준치가 되었으며 이러한 머름대가 있음으로 해서 방 안에 앉은 이는 안정감을 얻는다.

 

창은 바깥의 띠살무늬 덧문만 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에 명장지의 미닫이와 맹장지의 갑창을 달기도 한다. 미닫이를 열면 두껍닫이 속에 묻혀서 창을 통하여 내다보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부자 집이나 격조를 따지는 집에서는 명장지 다음에 갑사천을 바른 사창을 하나 더 달기도 하는데 갑사는 현대의 방충망만큼이나 얇아 투명하며 통풍도 가능하여서 여름철에 시원하게 지내는 데 유익하다. 창살의 무늬 구성에도 유념하였고 두껍닫이에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 등을 써서 붙이고 바라보며 즐겼다. 이 두껍닫이는 전시용 벽면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7]  한옥은 안정감을 바탕으로  방의 넓이를 결정
 

▲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 한옥의 방넓이 모습     

 

방에 들어앉았을 때 아늑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방이 안정감이 있다는 것인데 한국 사람은 자기 몸을 기준으로 삼아 통상 안정감을 고려하는데 방의 넓이는 보통 한 변이 4.5m[15척]이었다. 형편이 좋아진다면 5.4m[18척] 넓이로 정할 수도 있고 신분이 높아지면 6.3m[21척]이나 7.2m[24척] 사방 넓이의 방에 살 수도 있었다. 4.5m[15척] *4.5m[15척]의 방 중앙에 사람이 앉았을 때 2.25m[7.5척]씩 간격이 좌우와 전후에 생겨난다. 여기에서 2.25m[7.5척]은 한국 사람들의 평균 신장 1.5m[5척]과, 앉은키의 눈높이까지의 평균치 0.75m[2.5척]이 합쳐진 것이다. 평면뿐만 아니라 입면 구성도 마찬가지이다. 방의 천장 높이를 보통 2.25m[7.5척]으로 잡는데 이는 앉은 키위에 서 있는 사람 한 길을 합한 수치이다. 방안에서 아랫목에 앉아 보면 방의 출입문은 대청에 있다. 마당에서 들여다보이는 앞 퇴마루에 면한 벽과 그 뒷벽엔 창만 설치한다. 대청에 면한 출입문은 세 짝, 네 짝, 여섯 짝이나 여덟 짝으로 만들어 단다. 가난한 집에서는 외짝 문을 달기도 하는데 외짝을 만든 것은 대청과 방 사이의 담벼락을 붙박이로 고정시키겠다는 의도를 나타낸 것이다. 이런 외짝문은 아랫도리에 얇은 나무판자를 대고 그 위에는 살대로 무늬를 만들어 얇은 창호지를 바른다. 세 짝 이상의 문은 안팎으로 두껍게 바른다. 벽체와 같은 질감을 만들려는 것이다. 아랫목에 앉아 바라다보는 곳이 허하면 왠지 불안해지므로 아늑하게 꾸미려 창을 내었다. 이것을 불발기창이라 한다. 창의 살대 안쪽에 창호지를 발라 광선을 받는다. 불발기창은 문의 중간쯤에 설치되며 설치되는 기준선이 그 밑선 인데 이 선의 높이는 앉은 사람의 눈의 높이와 같도록 한다.

 
8]  기[氣를] 고려한 한옥의 대청마루
 


▲ 대청마루 모습     

 

대청마루의 천장은 서까래가 드러나 보이는 연등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서까래는 지붕의 빗물받이 물매에 따라 30도에서 60도 사이의 각도로 걸리게 되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중심부가 높게 구조되고 좌우로 경사지게 되어 있다.
이 구조에서 중심부가 가장 높은 자리를 3m[10척]으로 잡았으며 한국 사람의 평균 신장이 5척이므로 마루 위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한 길이 되는 여유를 두게 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이 내뿜는 기는 하늘로 뻗치게 되어 억압되지 않은 채로 기가 승하여 의기양양한 인격으로 함양된다고 하여 평면과 입면설정에 이런 점을 유의하였던 것이다.

 

'왜 한옥이 좋은가?'
 


 


'왜 한옥이 좋은가?'

 

한옥에 대해 사람들은 막연하게 ‘친근감이 넘치고 조상들이 면면하게 살아와 우리 몸에 그저 정겹고 또 친환경적이다’ 라는 등의 말을 생각 한다. 조상 대대로 이 집에서 살아왔으며 우리세대 중 최소한 30대 이후의 사람들은 아파트나 빌라가 아닌 이런 집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 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옥이 나쁜가?’ 라는 질문인 경우엔 우리는 통상 ‘건축비가 비싸고 어딘지 비실용적이며 현대인의 편의주의와는 맞지 않다’ 라는 말도 있을 것입니다. 한옥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써 우려하는 측면에서 몇 가지의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하겠습니다.

 

 

가] 한옥은 우리 몸에 친화적이다
 

1] 친환경적인 자재의 사용

 

 ▲ 한옥의 친환경적 자재 사용    

 

국내산 시멘트 가운데 약 60%에서 위암과 폐암, 피부질환 등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인 '6가크롬'이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이 수치는 일본 기준치의 3배 이상이라고 하는데 시멘트 없이 집을 짓는다는 건 요즘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것이라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것 같으며 이 외에도 주택의 내부 공사 시에 사용되는 각종 건축자재에서 발생되는 화학성 유기화합물 등의 피해는 '새 집 증후군'이다 해서 심심치 않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전문의조차 낯설어 하던 이 용어는 이제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상식어가 되어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의 한옥이 몸에 좋다고 하는 것은 애매하나마 다 아는 일이지만 한옥을 건축할 때 사용하는 자재를 들어 설명한다면, 우선 한옥의 주요 자재는 나무와 흙으로 그것도 천연상태의 원목과 땅에서 바로 파낸 황토나 일반 흙인데 굳이 황토가 우리 몸에 좋은 원적외선을 다량 방출한다는 설명이 없어도 시멘트를 안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옥의 장점입니다.

 

‘방부목’이라 하여 방부처리를 한 목재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옥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외국의 목조주택에서 주로 쓰는 나무이며 한옥을 지을 때 쓰는 나무는 아예 원목상태에서 목수들이 가공을 하거나 또는 제재소에서 제재한 나무를 목수가 음,양의 장부만 파고 그대로 뼈대로 이용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골조를 세우고 난 이후에 작업순서는 지붕입니다.
 


▲ 한옥의 개판을 까는 모습    

 

서까래를 깔고 그 위에 개판을 올린 후 황토를 얹게 되는데 예나 지금이나 똑 같은 공법을 쓰고 있으며 비용절감을 위해 흙 대신 스티로폼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이 또한 한옥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서까래 위에 대나무나 싸리를 엮어 개판으로 이용했지만 요즘은 인건비 절감 상 대부분 넓은 판재를 쓴다는 것이 약간의 차이일 뿐 기와를 이지 않고 그냥 짚 이엉이나 갈대지붕, 너와 등으로 하는 현대 한옥은 방수시트를 까는데 콜타르가 발린 천을 개판위에다 깔고 그 위에 짚 등을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기와는 흙으로 된 토기와나 경제적 이유로 시멘트 기와를 많이 씁니다.

 
여기까지 인체에 영향을 끼칠 소지가 있는 자재는 비용절감의 경우로 스티로폼과 방수시트정도입니다. 다음 공정은 벽체인데 대부분의 경우 황토 흙이나 황토벽돌을 쓰며 황토가 건조 시에 크랙의 우려가 있어 시공 후 다소 모양새와 시공 상에 불편하여 까다롭긴 합니다만 한옥 건축주의 대부분은 이를 무릅쓰고 황토의 장점이 여러모로 좋아 이 자재를 즐겨 쓰며 방바닥 역시 대부분, 황토로 미장을 하며 역시 비용절감을 위해 드문 경우, 시멘트 미장을 합니다. 이 경우에도 시멘트의 위해를 줄이기 위해 황토 흙으로 덧 칠를 합니다.

 

그리고 방바닥의 밑 부분, 즉 하인방 아래에 해당되는 벽체는 예외적으로 거의 대부분 시멘트나 또는 이것이 섞인 황토분말과 호박돌을 쓰는데, 이유는 방바닥 밑을 파고드는 쥐나 다른 해충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편이며 창호는 겨울의 한기 때문에 외부는 한옥 창을, 내부는 샤시 등의 현대 창호를 번갈아 많이 쓰는 편입니다. 나머지 인테리어 부분은 황토로 벽체를 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거나 한지를 바르는 게 전부입니다.

 
우리 몸에 좋다는 것과 친환경적이란 말은 어쩌면 동의어로 우리의 몸은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던 헌 집이 수명을 다해서 그것을 뜯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자 할 때 지붕을 뜯고 벽체를 허물며 골조를 해체해 자연 속에 그대로 돌려보낼 것과 건축폐기물 저장소로 실어 옮길 것을 분리해보면 폐자재의 90% 이상은 나무와 흙입니다. 흙은 그대로 대지로 보내고 나무는 땔감으로 재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인방 밑에 조적용으로 쓴 시멘트와 비용절감을 위해 얹었던 지붕의 시멘트기와 그 뿐입니다. 더더욱 비용절감을 기하려 했던 건축물이라면 방수시트와 스티로폼 정도가 집의 폐기물 전부일 것입니다.

 
2] 실내의 대류현상 


 

▲ 한옥의 천정구조   

 

요즘 들어 서양식 목조주택을 짓는 현장들이 많이 늘어나는데 이것은 공사기간이 짧고 한옥에 비해 다소 저렴하며 보온성과 단열성이 좋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에 비해 한옥은 공사 기간이 길고 가격 면에서 약간은 비싸기 때문에 조급한 현대인의 성향과 경제적인 이유로 꺼려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재의 친환경성 논란이나 정서적인 문제 외에도 제대로 지은 한옥은 주거의 쾌적성이 뛰어나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한옥의 마당에선 태양빛으로 인해 뙤약볕이 가득한데 집안에는 왜 시원할까요? 이것은 황토와 지붕의 조화라 생각하며, 더욱이 대청마루는 앞뒤가 훤히 트인 개방형 구조로 되어 있어 마당과 뒤뜰의 높은 온도와 집 내부의 낮은 온도는 서로 교류하게 되어 있어(지붕의 토기와와 그 밑에 깔린 두꺼운 흙이 뙤약볕을 차단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고 그 밑의 대청 쪽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음)온도차에 의한 열의 대류가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천정은 평면 구조가 아닌 삼각형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대류현상으로 검토 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아울러 대청마루 밑도 개방구조 인데다 마루판도 약간의 틈새가 있어 여기서도 공기의 순환이 생기게 마련이며, 한옥은 열을 차단하는 기능과 함께 대류현상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천정의 구조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으니 더욱 그러하며 겨울에 아궁이에 불을 때면 대류현상은 가일층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3] 숨 쉬는 한옥
 


▲ 한옥의 황토벽 처리    

 

황토 흙을 한 줌 떠서 현미경으로 보면 아주 수많은 기공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이 미세한 많은 기공들은 고온다습한 우리나라의 여름철 습기를 빨아들여 외부에 비해 낮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어떤 첨단의 건축자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적인 비결입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기온이 높은 중동에 가면 보통 4~50도를 오르내리는데 햇볕에서는 못 견디게 덥다가도 태양이 차단되는 그늘에 가면 금방 시원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 습도란 놈도 기온 못지않게 더위를 느끼게 하는 주된 원인이지요.


이렇듯 여름철엔 다습한 공기를 황토벽에 가두어 쾌적한 실내를 만들며 반대로 겨울에는 머금고 있던 습기를 방안으로 방출함으로써 건조한 실내를 적당하게 조절하는 기막힌 '천연습도조절기'역할을 하는 것이 황토벽인 것입니다. 집의 골조를 이루고 있는 나무 또한 흙과 마찬가지로 많은 기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요즘 잘 지어졌다고 하는 목조주택에 가보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걸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에 하룻밤만 그 집에서 지내보면, 일반적인 주택에서와는 달리 무척 갑갑한 느낌을 쉽게 받는데 이는 외부의 온도를 차단하기 위해 보온공법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여 지는데 목 골조를 설치한 다음, 맨 외부의 사이딩에서 부터 타이벡(tyvek), OSB합판, 인슐레이션, 합판, 내부마감재 등 많은 종류의 가공된 자재를 시공하게 되어 단순히 흙으로만 차단된 한옥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외기와 내기가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 한옥은 절대 비싸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한옥이 비싸다고들 합니다. 어떤 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많은 부분에서는 잘 못 인식되어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목조주택도 다양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한옥은 이보다 훨씬 더 합니다. 그것은 한옥이 타 건축물과 달리 다양하게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예를 들어 기둥과 도리와 보로 대표되는 기본적인 구조재 외에 수많은 치장재로 화려하게 꾸밀 수 있고 또한 나무의 크기와 굵기를 마음대로 키울 수가 있는 것이며, 원목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고가에서 저가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골라 쓸 수가 있어서 획일적으로 "평당 얼마에 짓는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옛날 양반집과 요즘 많이 짓는 한옥들과 비교해 본다면 가로, 세로가 5치[1치:약3cm]에 길이가 9자[1자: 30.303cm] 짜리 각재라면(제재목) 기둥 하나가 18.75才[1才:1치*1치*12자]가 되는데 요즘 한옥은 주로 7치를 많이 씁니다(약36.75才) 6~70년대 까지만 해도 서민들 집의 기둥은 보통 4치를 썼습니다.

 

옛날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가 비싸다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나머지 도리와 보, 서까래를 합치면 2.5배 이상 차이가 나고 또 치장재를 많이 쓸수록 격차는 더욱 커지니 3배 이상 나무 양이 소요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25평[1평:3.305m2]을 기준으로 해서 7~8000才가 넘지 않는 것이 옛날 우리 조상들의 집이었다면 지금은 20,000~25,000才 이상 소요되어 나무 값보다 더 비싼 인건비를 감안하면 ‘한옥이 비싸다’ 라는 얘기가 당연한 것입니다.

 

한옥이 사장위기에 접어들던 국가적으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로 추정하는데, 통상 인건비를 책정할 때 나무 양과 비교해서 계산하는 버릇이 남아 있어 지금도 즐겨 쓰고 있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며 건축주와 도목수가 나무 소요량을 상의할 때 이 방법을 쓰게 되면 목수는 나무의 양을 당연히 늘리려 합니다.

 

그래서 한옥건축을 하고자 하는 건축주는 보다 실용적이고 좀 더 치밀한 계산으로 나무 양을 정하는 일이야말로 한옥을 값싸게 짓는 절대적인 비결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목조 부분을 경제적으로 정하고 난 다음에는 시멘트를 쓴다, 스티로폼이나 합판을 쓴다는 생각은 버리고 그야말로 친환경적이고 우리 몸에 좋은 황토로 벽체를 구성한다거나 구들을 깐다면 우선은 건축비가 증가할 수 있지만 멀리 내다보면 여름철과 겨울철에 냉난방비의 절감에 큰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 한옥의 실용성

 

사람들은 전래의 한옥이 불편하고 비실용적이라고 합니다. 멀리 떨어진 화장실, 재래식 좌식 부엌, 좁은 방.. 느끼기에 따라선 불편한 구석은 많지요. 그러나 현대의 한옥은 어느 구석에서 불편하다는 말을 들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실내에 수세식 좌변기를 놓을 수도 있으며 ,싱크대를 놓아 입식형식으로 생활할 수도 있으며 오히려 콘크리트로 타설된 현대주택보다 오히려 더 편리하게 실용적 구조로 꾸밀 수 있는 것이 현대 한옥의 매력입니다. 초기 시행착오로 설계가 잘못 되어졌다고 해도 훗날, 콘크리트 주택보다 훨씬 쉽게 구조변경을 하기가 용이한 장점도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매일 계속되는 "전력 사용량, 사상 최고치 운운"하는 소리를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들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수의 사람들은 전기가 끊겨 밤새 에어콘은 고사하고 선풍기 없이 비지땀 속에서 곤혹을 치르거나 냉장고 속의 음식물이 다 부패해 식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이나 미국, 캐나다에서 종종 일어나는 대형 정전사태를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자주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편으로 또다른 장점은 세계의 건축가 및 과학자,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난방법이라는 우리 고유의 ‘온돌구들방’을 놓는다면 겨울철에도 국가적 차원이나 환경적 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4계절이 뚜렷하던 우리나라가 지구의 온난화와 함께 봄과 가을이 퇴색되어 긴 여름과 긴 겨울, 두 철만 있다고 할 정도로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습니다. 매년 그 기록을 갈아치우는 강우량과 적설량의 증가와 함께 무더운 더위와 맹추위가 한반도를 휩쓰는 것이 요즘의 기후이며 여름철 냉방기의 사용량 증가와 함께 추위를 이기기 위한 난방시설비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처럼 한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과학적인 구조로 되어있는 한옥의 실내, 하절기의 다 습도와 동절기의 저 습도를 알아서 조절 해주는 황토벽은 고비용의 에너지 사용은 물론, 여기 저기 거미줄같이 얽혀 무질서한 전선하며 각종의 가전제품들을 갖추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타 건축물에 비해 우리의 한옥은 간결하고 깔끔함을 유지시켜 주는 참으로 실용적인 건축물이라 할 것입니다.

 

한옥의 과학적 우수성과 특징
 


 


 
앞장에 이어 한옥을 짓는 과정은 일반 독자층으로선 신비롭게만 비쳐질 것이며 모름지기 알듯말듯한 한옥용어부터 우리 것 이지만 생소하기가 그지없다. 실제로 우리 한옥은 시공시에도 현대건축기법과는 다르게 못을 거의 쓰지 않고 짜 맞추는 형식으로 구성한다. 못을 사용하게 되면 녹이 슬 경우 재목이 치명적 손상을 입기 때문이며 재목을 치밀하게 다듬어 요철을 빈틈없이 짜 맞추는 대목의 기술에 이르러서는 감탄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 건축의 미학과 과학적 우수성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예는, 앞장에서도 잠시 설명했듯이 기둥의 가운데를 위?아래쪽보다 불룩하게(배흘림) 깎는다든지, 건물의 양 끝에 세운 기둥의 위쪽 끝 부분을 안으로 쏠리게(안쏠림) 하거나, 창방의 양 귀쪽을 솟도록(귀솟음) 살짝 들어 올린다든지 하는 건축 기법등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배려는 건축을 마주하고 선 사람의 위치에서 볼 때 반듯하게 보이도록하는 착시의 과학을 활용한 것으로, 단순한 손 기술을 넘어 예술과 과학의 조화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전통마을 등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 같은 섬세한 과학이 스며든 한옥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들 한옥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첨단 건축물이기도 하다. 목공이 흙과 나무와 기와만으로 수백 년을 견디는 건물을 지은 땀의 무게를 가늠하면서 기와 한옥을 마주하면 더 진한 감동으로 느껴오듯 앞으로 이러한 한옥의 잔잔한 감동을 느껴보실 수 있도록 써 나가겠으며 이번 장에선 기단과 초석,지붕으로 우리의 한옥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정리하겠다.

 

 

9].기단
 

▲ 기단    

 

기단이란 전통 가옥에서 우천시에 빗물이 튀는것과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습기를 피하고 동시에 건물의 군위를 높히기 위하여 건물 밑부분에 돌을 쌓거나 다른 자재를 써서 쌓아 올린 단인데, 돌로만 쌓기도 하며 기와와 벽돌을 또는 돌과 벽돌을 섞어 쌓기도 한다.

 
가.쌓는 재료에 따른 분류

 

토 단 : 조선시대 서민주택의 기단, 흥륜사지

 

토축기단 : 토축 기단은 일반 살림집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진흙을 다져 쌓아 올려 만드는 기단인데 견고성을 위하여 작은 돌을 섞어 쌓거나 목심을 박아 쌓기도 하고 때로는 기와 편을 섞어 쌓기도 한다. 토축기단을 죽담이라고도 한다.

판전으로 백제시대 건축, 익산 왕궁탑

 

전축기단 : 벽돌이나 기와를 세우거나 눕혀 마무리하는 형식, 부여 군수리 사지, 화성성곽 포루

 
석축기단 : 자연석(막돌)이나 다듬은돌로 마무리한 형식으로 한국 기단의 주류를 이룬다.
 
- 자연석 기단(막돌 기단)
자연석 기단은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서로 맞춰가면서 쌓은 기단으로 매우 폭넓게 사용되었다. 안동 양진당, 의성 김씨종택 등의 살림집과 봉정사  대웅전, 쌍계사 대웅전, 전등사 대웅전, 금산사 미륵전, 화암사 극락전 등의 사활건축에서 볼 수 있다.
 
- 장대석 기단
장대석 기단은 도로 경계석과 같이 생긴 일정한 길이로 가공된 장대석을 층층이 쌓아 만든 기단을 말한다. 조선시대 가장 널리 사용되던 기단으로 지금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다.장대석기단의 맨 위층 모서리에서는 두 장대석을 'ㄱ'자 모양으로 붙여 놓았을 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귀가 벌어지는 결정을 보완하기 위해 큰돌을 'ㄱ'자 형태의 통돌로 만들어 놓는데 이를 귀틀석이라고 한다.
 
- 가구식 기단
가구식 기단은 매우 고급스런 기단으로 주로 고려 이전의 중요 건물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 화강석을 가공하여 만들었는데 장대석 기단과 다른 점은 목조 가구를 짜듯이 구성한다는 것이다.

판전 또는 막돌 허튼층 쌓기로 마무리한 형식, 한국 기단의 주류


나.단형식의 수에 따른 분류

 

단층기단 : 높이에 관계없이 하나의 층
다층묘단 : 층수가 2이상이 되는 것


다.마감석재의 형태와 층에 따른 분류

 

막돌 허튼층 쌓기 : 봉정사 대웅전, 부석사 석축, 해인사 대장경 판고
막돌 바른층 쌓기 : 금산사 미륵전 측면기단
다듬돌 허튼층 쌓기 : 도동서원 강당.
다듬돌 바른층 쌓기 : 도산서원 전교당


라.돌쌓기 종류

    

               

        막돌막쌓기              납작돌수평줄눈쌓기            개울돌막쌓기                  사고석쌓기 

 

               

        이고석쌓기             상하장대식막돌면석             견치돌빗쌓기                      빗쌓기


 
10].초석

 

 ▲ 초석    


초석은 주초라고도 하며 기둥 밑에 놓여 기둥에 전달되는 지면의 습기를 차단해주고, 기둥의 하중을 받아 기단을 통해 지반에 효율적으로 전달시키는 역할을 한다. 삼국 시대의 초석이 고려 시대나 조선시대의 것보다 더욱 정교하게 가공되었다.

 

목조탑에서는 종교적 숭앙물인 사리봉안을 위해 건물 내부에 특수 초석(일명 심초석)을 지하에 매설하는 경우도 있다. 초석의 크기는 판석으로 부터 기둥으로 간주되는 대형초석까지 있으며 영조법석의 기록을 보면 초석의 크기를 임의로 결정지을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초석은 지상에 노출되기 때문에 민족적 정서에 따라 많은 조각과 장식이 들어가기도 한다.

 

초석에는 자연석을 돌생김새의 굴곡면에 기둥을 깎아 맞춰 얹어 놓음으로서 초석과 기둥의 일치감을 주어 견고한 안정감과 자연스런 조화를 주는 막돌 초석과, 막돌을 가공하여 만든 다듬돌 초석이 있다.

 

막돌초석(덤벙柱礎) :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된 것으로 자연에서 채취한 적당한 크기의 돌을 그대로 사용 된 것이다.
                            -건축물 : 내소사 대웅전, 하동 쌍계사 후문

 

다듬돌초석(加工柱礎)

 

       원형초석 : 막돌을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원형기둥이 서는 부분을 볼록하게 만든 초석.

   

                    

 

       방형초석 : 사각기둥을 받도록 만든 초석.

   

                     

 

        8각형초석 : 8각형 기둥을 받도록 8각형으로 된 초석.

                                     -건축물 : 고구려의 쌍영총, 석굴암 8각석축, 나주향교 대성전

 

       원주형초석: 조선시대의 루건축(樓建築)에 많이 사용되었던 초석으로

                                       초석자체를 민흘림 기둥으로 하고 밑등을 넓적 하게 처리하여 안전하게 한 것이다.

                                       -건축물 : 범어사 일주문, 정읍 피향정

 

        방주형초석: 단주형(短柱形)과 장주형(長柱形)이 있다.

                                       -건축물 :단주형- 궁궐, 일반상류주택, 경복궁 자경전 , 장주형- 루(樓), 정자의 초석, 경복궁 경희루 
 


11].지붕

 

가. 기와집

 

기원전 후로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우리의 전통한옥의 백미인 기와는 예전에 기와를 기와장이가 얹기까지, 기와를 만들 때, 큰 틀 안에 모래와 흙 그리고 물을 붓고 나서 소로 하여금 이리저리 밟고 다니도록 해서 잘 이긴 뒤에, 이 흙을 기틀에 넣어 꼴을 잡아 말리고 잿물을 발라 가마에 넣어 구웠으며 따라서 큰집을 지을 때에는 돈을 미리 주고 필요한 수량의 기와를 맞추어 두어야 했습니다.
 
서민 가옥의 기와 일은 먼저 암기와를 나란히 깔고 사이사이에 숫기와를 덮고 나서, 숫기와 앞에 흙과 백토로 빚은 아귀토로 막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잘 짓는 집에서는 암막새를 먼저 놓고, 암키와를 서너 겹으로 겹쳐 깔아서 한두 장이 깨져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한다. 수키와도 역시 숫막새를 먼저 놓고 홍두깨흙을 얹은 뒤에 덮어 나가며 지붕마루에는 적새라 하여 암기와를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숫기와를 덮었다. 따라서 암기와를 많이 덮을수록 지붕마루가 높아져서 집 자체가 커 보인다.

 

어떤 기와집에서는 복문이라고 하여 적새 위에 숫기와를 얹을 때, 한가운데의 두 장을 서로 어스러지게 팔자(八字) 모양으로 마주 세워 두는 일이 있으며 이를 세울 때 주인은 기와장이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므로 상량을 올리는 날이 목수의 생일이라고 하듯, 이날을 기와장이의 생일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이 문으로 복이 들어온다며, 까치구멍처럼 원래는 채광이나 배연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또 팔작지붕의 경우에는 지붕마루마다 망와라 하여 도깨비 모양의 암막새를 얹습니다. 망와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귀면에 가까우나 뒤에 점차 약화되어 왔고, 곳에 따라서는 태극이나 주역무늬가 새겨진 것을 쓰기도 한다. 근래에는 사람 얼굴모양의 것을 많이 얹으며 단지 꽃잎을 양각한 것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망와는 잡귀를 물리쳐 준다는 속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초가집
 

▲ 초가집    

 

볏짚을 언제부터 지붕에 덮기 시작하였는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으나, 벼농사가 시작된 삼국 시대에 이미 이것을 사용했으리라고 추측된다.


볏짚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 안의 공기가 여름철에는 내리 쬐는 햇볕을 감소시키고, 겨울철에는 집안의 온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리고 겉이 비교적 매끄러워서 빗물이 잘 흘러내리므로 두껍게 덮지 않아도 스미지 않으며 누구든지 이를 쉽게 덮을 수 있어 편리하며 또 초가지붕은 짚 자체가 지닌 성질 때문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푸근한 느낌을 주며, 한 해에 한 번씩 덧덮어 주므로 집에 각별한 치장을 하지 않아도 거의 언제나 밝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

 

지붕의 물매는 매우 완만하기 때문에 농가의 마당이 좁을 때에는 고추 따위의 농작물을 널어 말리며, 천둥 호박이나 바가지의 덩굴을 올려서 지붕을 밭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한다. 짚으로 지붕을 잇는 방법에는, 비늘 이엉법과 사슬 이엉법의 두 가지가 있다.


앞의 이름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은 데에서 온 것으로 짚의 수냉이를 한 뼘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며 길게 엮은 날개 두 장을 이엉꼬챙이로 꿰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수명은 사슬 이엉보다 오래 간다.

 

사슬 이엉은 수냉이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일정한 크기로 엮은 날개 수십 장을 둥글게 말아서 지붕 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 나가면서 지붕을 덮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수냉이가 처마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 나가며 사슬 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이 매끈하며,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적당한 간격을 두고 새끼를 늘여 서까래 끝에 잡아맨다.


우리나라의 서북지방에서는 주로 비늘 이엉으로 그리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사슬 이엉으로 덮으며 이렇게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뒤에는 용마루에 용구새를 얹어서 마무리 짓는데 이것은 빗물이 잘 흘러내리게 좌우양쪽으로 비탈이 지도록 솜씨 있게 엮어야 하며 또 바람이 심한 데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막기 위 해 새끼를 그물처럼 엮어서 덮는다.

 

충청도에서는 가로로 길게 매는 것을 '장매', 세로로 짧게 매는 것을 '가르매' 라고 하며 서까래 끝이 썩지 않도록 이엉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지스레미'라고 한다. 초가지붕은 대체로 모임지붕의 형태를 이루나 겹집인 경우 이른바 까치구멍이라고 하여 용마루를 짧게 하고 좌우 양끝의 짚을 안으로 욱여넣어서 까치가 드나들 만한 구멍을 내어 두는 일이 있다. 이 구멍으로 집안에 햇볕이 들어오고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멍은 초가집뿐만 아니라 너와집이나 굴피집에서도 볼 수 있다.

 

또한 ‘지붕위에는 취두, 용두, 잡상 등을 두었으며 귀면 등을 장식’ 하여 큰 건물의 지붕을 이루었으며 형태에 따라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팔작지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였다.
 


다.모양에 따른 분류

 

1.맛배지붕: 
 

 ▲ 맛배지붕    

 

가장 간단한 형식으로 주심포 양식에 많이 쓰이며 처마 양끝이 조금씩 올라가고 측면은 대부분 노출되는 구조미를 이루어 수덕사 대웅전, 무위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개심사 대웅전, 선운사 대웅전등이 있다.

 

2.우진각지붕:
 


▲ 우진각지붕    

 

지붕면이 전후좌후로 물매를 갖게된 지붕양식으로 지붕면의 높이가 팔작지붕보다 높게 되어 있는 해인사 장경판고등이 있다.

 

3.팔작지붕:
 


▲ 팔작지붕    

 

가장 아름다운 구성미를 지닌 지붕으로 곡면이 특이하여 부석사 무량수전 통도사 불이전등이 있다.

  

 

4.사모지붕: 현존하는 사찰 건축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조로 불국사, 관음전, 창덕궁 연경당의 농수전 등이 있다.

 
5.육모지붕: 평면이 육각으로 된 지붕으로 경복궁 향원정이 있다.

 

6.팔모지붕: 평면이 팔각으로 된 지붕

 
7.J자형 지붕: 통도사 대웅전

 
8.십자형 지붕: 전주 송광사범종루,비원부응정

 


[김왕직,그림으로 보는 한국건축용어 참고]

 

 

라.지역에 따른 분류

 

1. 함경도 지방형

 

구조 : 함경도와 강원도 일대에 분포된 이 형은 부엌-정주간과 방들의 일부가 "田"자형으로 구성된다. 이를 일명 "田자형 주택"이라고도 한다. 이형의 특징은 부엌과 정주간 사이에 벽체가 없이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형성하고 그 옆으로 방들이 "田자형"을 이루면서 서로 붙어 있고, 또 부엌의 부뚜막과 아궁이는 부엌과 정주간 사이에 자리하게 되어 자연히 부엌바닥과 정주간 바닥 간에는 상당한 높이차가 형성된다. 이 형은 부엌 한쪽에 외양간과 디딜방앗간 등이 놓이고 방들이 서로 벽을 공유하면서 서로 맞붙어 있는 것은 추운 지방의 기후적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함이다. 또 같은 원인으로 "대청"이 설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타지방과 비교 : 한편 강원도의 고성에는 함경도지방형과 흡사하면서도 정주간이 없는 대신 "田"자형 방 앞에 긴 툇마루가 옥내에 설치되는 특수한 평면유형이 분포되어 있다.

 
2. 평안도 지방형

 

구조: 평안도와 황해도 북부의 일부지방에 분포된 형으로 부엌과 방들이 [一]자형으로 구성되어 "一자형"이라고도 합니다. 또 부엌과 방 두개가 연속으로 구성되어"삼간형(三間形)"이라고도 하며, 남부지방의 가난한 서민주택들이 이 형을 많이 채택하기 때문에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므로 "일반형"으로 분류한 학자들도 있다. 평안도나 황해도의 서민주택들은 일반적으로 몸채를 "一자형"으로 하고 여기에 따로 광, 오양간, 측간 등이 하나의 채로 구성하여 부속채를 이루게 된다.

 

타지방과 비교: 남부지방의 "一자형"은 더운 지방이니만큼 대부분 대청마루가 1간 더 있게 되어 북쪽의 일자형과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3. 중부 지방형

 

구조: 황해도 남부와 경기도, 충청도 일대의 중부지방에는 "ㄱ자형"이 분포되는데, 평면이 "ㄱ자"모양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지방형"과 같은 "ㄱ자형"이나 부엌과 안방의 방향이 중부 형에서는 남향이고, 서울지방형에서는 동서향이 되는 것이 다르다.

 
4. 남부 지방형

 

구조: 부엌, 방, 대청마루, 방이 일렬로 구성되기 때문에 "一자형"이라고도 한다. 서민주택 중 비교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일자형 몸체 이외에 광, 헛관, 오양간, 측간 등으로 구성된 부속채가 별도로 세워진다.

 

타지방과 비교: 평안도지방의 一자형과 다른 것은 여름철에 대비하여 대청마루가 방과 방 사이에 있다.

 

5. 제주지방형
 
제주도라는 특정지역인 섬에 분포된 형으로 그중앙에 대청마루인 상방을 두고 이의 서측으로 부엌과 작은구들, 동측으로 큰구들과 고팡을 배치하였으며 큰구들은 부모들이, 작은구들은 자녀들의 공간이고, 부엌의 부뚜막은 작은구들 쪽과 반대되는 위치에 두어 취사시의 열이 방에 들지 않도록 했다. 또 큰구들과 작은구들의 구들고래들은 방 전체의 3분의 2 정도만 깔리는 것이 특징이며 고팡은 물건을 보관하는 수장고인 것이다

 

 

출처 : 보지 않아도....있다.
글쓴이 : 너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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