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의 자료

[스크랩] 정조대왕과 풍수


.
우리 국토가 쓰레기로 뒤덮혀도 그런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 앞에서 생명이 쓰러져도 모른 척 하는 사람도 있죠. 주변의 일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믿는 까닭이겠지요.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물은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의 위치에 따라 조류의 흐름이 바뀝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계절도 바뀝니다. 많은 별들의 움직임이 지구의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명왕성은 지구에서 약 57억 내지 72억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죠. 그 거리는 시속 400km의 비행기가 약 1,600년 내지 2,000년 동안 날아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죠.

그런 까닭에 명왕성은 지구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은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명왕성의 위치에 따라 지구의 지진대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의 과학으로는 명왕성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측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현대과학의 한계입니다. 그 때문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죠.

음양오행의 원리는 만물을 하나로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 때문에 자연은 곧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문제는 내 문제이고 생명은 끝없이 계속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잘 모르겠지만 풍수와 운명이론에서는 주변사람은 물론이고 죽은 조상까지 현재의 삶에 영항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이 삶의 기반입니다. 인간의 형상은 천지의 형상과 비슷합니다. 머리는 하늘을 닮아 둥글고, 발은 땅을 닮아 방정하며, 눈은 일월의 형상을 닮아 광채가 있습니다. 4계절이 있어 사지(四肢)가 있고 남북이 있어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이 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가 있어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있습니다.
바다 비율만큼 인체의 혈액이 있기도 하죠. 차가운 기후와 뜨거운 기후가 있어 인체는 보혈(補穴)과 사혈(寫穴)이 있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1년 24절후가 있어 24마디의 척추가 있고, 1년에 365일이 있어 인체에 약 365군데의 경혈(經穴)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자연이 변화하면 곧 인간의 운명도 변화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죠. 풍수에서는 바로 그 자연의 원리에 어울리는 처신을 찾으려고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풍수 인테리어는 집구조에 맞춰 가구의 배치를 다르게 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형이나 수맥의 흐름을 살펴 가구나 침실의 위치를 바꿀 수 있습니다.
흉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풍수 인테리어는 운명과 건강에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다만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의 운명을 모른다면 오히려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선무당이 멀쩡한 사람들을 해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섣부른 상식을 활용해서는 정말 곤란합니다.
풍수전문가를 사칭하는 사람도 조심해야겠지요. 지형이나 수맥의 흐름은 집구조나 가구의 배치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집의 구조나 가구의 배치만으로 흉을 피할 수 있다고 단정한다면 이는 주객의 전도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좋은 땅에서는 집구조나 가구의 배치가 나쁘더라도 별 탈이 없습니다.
문제는 나쁜 땅입니다. 거기에서는 아무리 완벽한 배치라고 해도 흉은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칫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 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얼치기풍수가 가문을 망가뜨리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풍수전문가를 사칭하는 사람은 제법 많습니다.
사실 풍수와 운명이론의 대가일수록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는 사례가 더 많습니다. 혹자들은 그것을 '실력이 부족한 탓이다'라거나 '풍수와 운명이론이 쓸모가 없다'는 확실한 증거라고도 합니다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풍수의 묘리(妙理)를 깨우치려면 속세의 재물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계속 산을 오르내리며 이치를 터득해야 하는 데 어느 세월에 돈을 벌 수 있겠습니까. 믈론 그들은 결코 가난을 탓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명풍수들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
정조 임금은 평복으로 미행을 다니기를 즐겼다.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살펴보려는 목적이었다. 하루는 가난한 총각이 부모의 장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형을 살펴보니 형편 없는 자리에 물까지 고여있는 것이 아닌가. 장사를 지내고 나면 아들까지 곧 죽을 수밖에 없는 흉당이었다.

임금은 총각의 살림이 어려워 지관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곳에 장사를 지내고 있는 총각이 불쌍하다는 생각에 정조임금은 눈물을 흘리면서 총각에게 천 냥을 주었다. 그런 다음 좋은 자리로 옮겨 장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런 뒤에 총각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이 자리를 잡아주던 지관이 하관하기 전에 천 냥이 생긴다고 하더니 그게 정말이네?"

임금은 깜짝 놀라 총각에게 물어 자리를 잡아준 지관을 찾아갔다.
그 지관은 작고 낡은 오두막집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지관은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음에도 말없이 이웃에 사는 부자에게 곡식을 꾸어 후히 대접했다.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말에 부잣집 터도 자기가 잡아준 자리라고 자랑했다.

정조임금이 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이런 곳에서 궁색하게 살고 있는가?"

지관이 정색을 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이 자리는 임금이 임할 자리입니다."
-------

이야기 속의 지관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임금을 만나기 위해 가난한 살림을 감수했던 것이죠. 재물보다 명예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것이죠. 원래 운명은 좋고 나쁜 것으로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만약 자신에게 걸맞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행복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불행한 운명이 되어버립니다. 가령 호랑이가 개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호랑이를 부러워하는 개는 없습니다. 묵묵히 개로 살아갈 뿐이죠. 그것이 운명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개가 다 불행합니까? 그건 아니지요.

많은 사람들이 턱없는 욕심을 부립니다.
개같은 인간임에도 호랑이처럼 살고 싶어 발버둥을 칩니다. 호랑이 같은 인간이 개의 운명마저 탐을 냅니다. 그런 욕심이야말로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죠. 일부 술사들은 좋은 운명이 있고 나쁜 운명이 있다고도합니다. 그들은 재물이나 지위로 운명을 구분합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는 재물도 없고 지위도 없었습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서른 세 해를 살았지요. 제자의 배반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고다마 싯다르타는 왕자로 태어나 거지와 다름없는 생으로 일관했습니다. 설법의 댓가라면 밥 한 끼가 고작이었죠. 그럼에도 예수나 싯다르타는 자기 삶에 만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말단 공무원은 불행하고 대통령은 행복한 운명입니까? 부자는 행복하고 거지는 불행한 운명입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건희나 빌 게이츠가 예수나 싯다르타보다 더 행복한 운명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이야기 속의 지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만족하면서 꼿꼿한 명예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서훈

http://www.k-mania.co.kr/index.htm
출처 : 문화방
글쓴이 : 매니아 원글보기
메모 :